배우기

배우는 휴게소

세이슈노사토는 와카야마가 자랑하는 명의 하나오카 세이슈의 연고지에 지어진 배우는 휴게소입니다.
하나오카 세이슈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자료가 있는 전시실과 주거 겸 진료실인 ‘슌린켄’을 견학할 수 있습니다.

와카야마가 자랑하는 명의

와카야마가 자랑하는 명의

청년 시절의 세이슈

하나오카 세이슈는 마취약 ‘마비산’을 발명해 세계 최초로 전신 마취로 유방암 적출 수술에 성공한 외과의입니다.

세이슈는 1760년 음력 10월 23일, 의사인 하나오카 쵸쿠도의 장남으로 현재의 와카야마현 기노카와시 니시노야마에서 태어났습니다.

23세에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교토로 유학
이즈음 고대 중국의 의사 화타가 마취약을 사용해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세이슈는 자신도 마취약을 만들어 지금까지 아무도 고치지 못한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일본의 화타가 되겠다’는 큰 목표를 갖게 된 세이슈는 3년간 필사적으로 학문을 닦은 후 귀향.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환자를 치료함과 동시에 새로운 치료법 연구와 약초 채집,
그리고 마취약 연구에 몰두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전신 마취로 수술에 성공

세이슈가 마취약 연구를 어떤 식으로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물을 사용해 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한 후에 인체에도 임상 시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임상 시험에는 어머니 오츠기와 아내 가에가 자진해 나섰다고 전해집니다.그리고 마침내 마취약 ‘마비산’이 완성되어
1804년 음력 10월 13일 역사에 길이 남을 세계 최초 전신 마취 유방암 적출 수술에 성공했습니다.

슌린켄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 냄

수술 성공으로 하나오카 세이슈는 일본 전국에 명성을 크게 날려
난병을 앓는 많은 환자들과 하나오카 세이슈류의 의학을 배우려는 의학생들이 그에게 몰려 들었습니다.그래서 세이슈는 새로운 진료소와 의학교, 자신의 거주할 곳을 겸한 ‘슌린켄’을 설립해
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구함과 동시에 문하생에게 의술을 가르쳤습니다.그리고 오사카 나카노시마에도 슌린켄의 분교 ‘가스이도’를 만들어
세이슈의 막내 동생 하나오카 로쿠조가 진료와 문하생 지도를 담당했습니다. ”
하나오카류 의학을 배운 문하생 수는 가스이도에서 공부한 이들까지 합하면 2255명에 이릅니다.

사회에 몸바치다

1809년 극심한 가뭄과 조공에 시달리는 농민을 구하기 위해
하나오카 세이슈는 사재를 털어 관개용 연못 확장 공사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공사를 진행할 때는 인근 농민을 고용해 품삯을 지불함으로써 조공 대신 낼 수 있어 궁지에 빠진 그들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 연못 이름은 ‘가이토 연못’으로
지금도 인근 농민들은 그 연못으로부터 물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연못 부근에는 비석이 서 있는데 ‘물을 보면 온맘을 다해 논으로 가라 옛 연못의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이라는 세이슈의 자작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세이슈의 만년

기슈 번에게 실력을 높게 인정받은 세이슈는
1802년 번주인 도쿠가와 하루토미를 접견하였고, 허리에 칼을 차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에도 시대 무사의 특권으로 평민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기슈 번은 세이슈를 어의로 추대하려 했지만
일반 환자를 진료할 수 없게 된다는 이유로 일단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재차 요청이 있어 1813년에 고부신 (小普請, 에도 막부의 계급 중 하나) 의사격에 임용되었고,
1819년에는 고부신 의사,
1833년에는 오쿠이시 (奥医師, 에도 막부의 의관)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리고 공직에 있으면서도 일반 환자 진료를 계속하고 싶다는 세이슈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세이슈는 한달에 반만 와카야마로 등청하고
나머지는 슌린겐에서 일반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1835년 10월 2일, 하나오카 세이슈는
76년 간 삶의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주: 연령은 우리 나이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전승되는 정신

하나오카 세이슈는 ‘활물궁리 (活物窮理)’라는 이념을 토대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의 의료를 목표로 하였고
그를 위해 치료 경험을 반복해
유효성을 확인한 후에 환자 개인 개인에게 맞는 치료를 행했습니다.
현대 의료에도 통하는 사고 방식을 210여 년 전
에도 시대의 봉건 사회에서 이미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오카 세이슈의 공적은 전후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미국 시카고에 있는 국제 외과 학회 외과 역사 박물관에서도 그 업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가 처음 마취 수술에 성공한 10월 13일은 ‘마취의 날’로,
그리고 마취약의 주성분인 흰독말풀 꽃은 일본 마취 과학회를 상징하는 마크와
와카야마 현립 의과 대학의 교표로 사용되는 등
그 정신과 함께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습니다.

하나오카 세이슈 자료 전시실

하나오카 세이슈 자료 전시실

휴게소 본관에 해당하는 플라워 힐 뮤지엄에서는 하나오카 세이슈와 문하생들이 남긴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오카류 외과를 오늘날에 전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슌린켄 (주거 겸 진료소)

슌린켄은 전신 마취 유방암 척출 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명의 하나오카 세이슈가 설립한 주거 겸 진료소입니다.
다이쇼 시대에 안채는 구 고카와초로 옮겨졌지만, 1997년에 재건되어
원래 자리였던 지금의 장소에 보존 상태가 양호한 본채를 다시 옮겼습니다.

지금의 슌린켄은 안채와 창고는 세이슈가 활약하던 당시의 건물이며
그 외 건물은 조사 자료를 토대로 복원한 것입니다.

영업 시간

10:00〜17:00 (16:30 최종 접수)
※11월-2월은 16:30 (16:00 최종 접수)까지

요금

어른: 200엔
초, 중학생: 100엔
초등학생 미만, 장애인수첩이나 요육 수첩을 소지한 분: 무료
단체 (15명 이상): 150엔

주거 겸 진료소였던 안채를 중심으로 교실, 약 조제소, 병동, 쌀광 및 행랑 등을 견학할 수 있습니다.
내부에는 세이슈가 한 수술이나 문하생에게 강의하는 모습이 인형이나 음성으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春林軒Map